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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부산 뮤지엄 다 Super Nature 전시회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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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4 / 인스타그램에 미리 적어놓은 글에 살을 조금 붙여서 옮겼습니다.

 


 

좌: 프루스트 의자, 우: Art bathroom

왼쪽의 사진은 전시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있던 프루스트 의자에서 찍은 사진이고, 오른쪽은 전시회를 모두 둘러보고 나오면서 Art bathroom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에 찍힌 제 모습 사이에는 어떤 뚜렷한 차이점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두 사진을 찍은 시간 사이에서 저는 전시회를 둘러보며 꽤나 큰 심경변화를 겪을 수 있었습니다. 

 


 

아래 세 영상은 메인 전시공간인 '미라클 가든' 입니다. 총 길이 35m, 폭 11m 그리고 무대 위로 솟구친 10m 높이의 미디어 월은 FULL HD LED가 도입된 국내 최초, 최대의 LED 전시 공간입니다. 가든에 발을 내딛자마자 미디어 월의 엄청난 규모에 압도당함을 느꼈습니다.

 

저녁 산들바람은 부드럽게 불고 aria for Venus
Not see the forest for the trees
SUPER NATURE: the starry night
붉은 산수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알게모르게 전시 작품과 관람객들 사이에서 묘한 괴리감이 느껴진건 저만의 착각이었을까요. 제가 느끼기에 SuperNature는 시종일관 화려한 전시회에 감탄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전시회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만 보이는 그로테스크함의 간극이 너무 컸던 것 같습니다.

 


 

기획전시실 '붉은 산수' 일부

빨간 그림은 기획전시실에 있는 대형작품 '붉은 산수'의 일부입니다. 사람들은 바로 저 작품 앞에서 5살배기 어린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작가는 관람객들이 오만할 거란 걸 예상했던 걸까요? 작품 붉은 산수속 자연경관은 자연이 아니었습니다. 여성의 나체였죠. 내가 부모였다면 어린아이를 그 작품 앞에 세우지 않았을 겁니다. 나는 붉은 산수로 가득한 방에서 그 기운에 압도되어 작품 외의 사진은 찍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예쁜 사진을 찍으라고 마련한 작품 앞의 붉은 소파에 앉을 수 없었습니다.

 

붉은 의자

이진명 비평가의 글에 따르면 이세현 작가의 붉은 산수에는 총 네가지의 에피소드가 담겨있다합니다. 네 가지는 각각 행복했던 통영의 유년기, 분도로 가득했던 서울의 청년기, 군 복무 시절의 성숙기, 그리고 런던에서 배웠던 예술철학적 완성기입니다. 그의 그림은 마치 겸재 정선의 시점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이 땅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모든 사건들이 파노라마처럼 집약되어 나타납니다. 원근법이 지켜진 건가 싶다가도 건물의 크기를 보면 그렇지 않죠.

 


 

다큐멘터리 존
안효찬 - 돼지위에 세워진 건물들

 

 

이 전시회는 관객의 오만함을 제대로 꼬집어 주는 것 같았습니다. Super Nature. 화려하고 아름다운 작품 앞에서 예쁜 모습을 찍으려고 안달 난 관객의 모습을 예상하고 비웃는 듯한 전시회였습니다.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디스플레이에 가득 찬 꽃들은 과연 꽃이었을까요?

 

전시회장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화려한 의자와 조명에 매료되어 사진을 마구 찍었던 내 자신이 출구를 지날 때 즈음엔 아주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나의 이번 글을 좋게 봐주신 분이 있었나 봅니다. 부족한 식견으로 쓴 글에 다른 관람객들의 기분이 상할까 걱정도 됐는데 운 좋게도 이번 전시를 기획하신 분께 글이 닿아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눌 수 있었습니다.

 

상업 전시는 필연적으로 시각적 볼거리에 치중할 수밖에 없기에 관객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상당히 완곡하게 숨겨서 제시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인스타그램에 전시회를 검색해보아도 그 결과는 온종일 예쁘고 화려한 전시회 속 예쁜 나의 모습뿐인 게 현실이죠. 사실 나도 그럴 목적으로 뮤지엄 다에 방문했었습니다. 항상 그래왔으니까요. 역시나 입구에서부터 화려함이 가득했습니다. 사방으로 꽉 찬 LED 불빛과 반짝이는 세라믹에 나 역시 순간 매료되었습니다. 그래서 궁금해졌습니다. 이토록 대자연을 화려하게 표현해서 전달하고 싶었던 게 대체 뭘까?

 

뮤지엄 다 입구

 

전시회를 둘러보고 나오니 뮤지엄 다가 부산 센텀시티에 위치한 게 신의 한 수로 느껴졌습니다. 내가 느낀 부산 해운대와 센텀시티는 이렇습니다. ‘어떻게든 높고 화려하게.’ 그런 모습이 뮤지엄 다의 중앙에 있는 메인 LED 벽과 매우 닮아있었습니다. 아름다움에 눈이 먼 사람들을 데려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 이 전시회의 목적이었다면, 나는 뮤지엄 다가 아주 훌륭하게 그 역할을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반짝거림에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은 그를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요.

 

 

가오나시의 '금'에 눈이 먼 직원들이 음식을 바치고 있다

 

글을 적다 보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가오나시가 문득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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